잘 할 수 있는 아는 분야로 시작
‘대박’ 아닌 일 찾는 과정이 목표 돼야
사업 가능성 평가받고 전문가 조언
공모전 도전 강추, 잘되면 상금도
 
2014년 8월 전북대 기숙사 앞에 소형 승합차가 등장했다. 이 대학 산업공학과 학생인 이기태(25)씨는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이 맡긴 빨랫감을 부지런히 승합차에 넣었다. 이씨의 승합차는 학교 인근 세탁소로 향했다. 수거한 빨랫감을 맡기고 세탁이 끝난 옷가지를 학생들에게 배달하면서 세탁비 일부를 받는 게 그의 작은 사업이었다.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은 세탁기가 부족해 늘 빨래가 고민이었지만 학교 밖 세탁소는 너무 멀었다. 이씨는 친구들의 고민을 듣다가 배달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프랜차이즈 세탁업체에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 세탁소를 살리는 청년이란 소문이 나면서 지역 학교, 공공기관 등도 그에게 주문했다.
 
이씨는 지난해 3월 ‘청년세탁소’라는 간판을 단 사무실을 차리고 단순히 빨래 배달이 아닌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다. 세탁소 관리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업주들에게 설치해 주면서 ‘청년세탁소’ 가맹점으로 만들고 소비자들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배달 음식을 주문하듯 가까운 세탁소를 찾아 주문 빨래하는 방식이다.

그는 “세탁소 매출의 1%를 받는 식으로 운영하려고 한다. 지금은 전주 인근 업체들만 협력을 맺었지만 향후 전국으로 넓히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씨의 청년세탁소는 교육부가 최근 선정한 300개 ‘대학생 창업유망팀’ 중에서 가장 우수한 10팀으로 뽑혔다.

최근 대학가에 창업 바람이 거세다. 창업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대학 창업동아리 수는 2012년 1222개에서 2015년 4070개로 늘었다. 대학도 재학생의 창업을 독려하고 있다. 창업휴학제·창업학점인정 등의 창업 친화적 학사제도를 도입한 대학이 2012년 1곳에서 2015년 200곳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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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창업선도대학 육성사업,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육성사업 등을 통해 대학에 창업 교육과 창업 지원을 위한 예산을 지원하며 청년 창업 바람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고혁진 한국산업기술대 창업지원본부장(경영학부 교수)은 “창업 교육이 강조되는 것에 비해 아직까지 실제 대학생 창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적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창업 경험은 자산이 될 수 있으니까 아이디어가 있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창업에 도전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청년세탁소를 차린 이씨의 사례를 보더라도 학생 창업은 가능한 한 잘 아는 분야를 중심으로 범위를 좁혀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씨의 경우 전북대 근처 세탁소와 협력 관계를 맺고 사업을 시작했다. 세탁소 업주들의 사교 모임에도 참석하면서 발이 넓어진 그는 300명의 세탁소 업주를 만나 협력 관계를 맺었다. 이씨는 “문전박대를 당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젊은 학생이 지역 세탁소와 상생하는 사업을 한다니까 반가워했다. 어르신들과 대화하길 좋아하는 성격이 가장 큰 무기”라고 말했다.

팀을 꾸릴 때는 친한 친구들끼리 모이기보다는 기술·마케팅·기획 등 각 분야를 잘할 수 있는 다양한 전공끼리 팀을 이뤄야 한다고 창업 선배들은 조언했다. 성균관대 컴퓨터공학과에 재학 중인 이민정(26·여)씨는 2014년 여행에 관련된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OWO(여행 with 인연)라는 창업팀을 만들었다. 행정업무와 재무에 능한 김승건(27·성균관대 경영학과)씨, 마케팅에 관심이 많은 김덕유(26·중앙대 불문과)씨가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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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티를 사업 아이템으로 숙소와 먹거리 예약 앱을 개발한 김덕유·김승건·이민정씨(왼쪽부터). [사진 김춘식 기자]

성격도 전공도 다른 세 사람이 개발한 것은 대학생 엠티에 필요한 숙소와 먹거리를 한번에 준비할 수 있는 앱인 ‘엠티를 부탁해’였다. 숙소 예약뿐 아니라 인원수를 입력하면 필요한 고기·음료·쌀 등을 계산해 주고 1인당 비용까지 산출해 준다. 결제하면 제휴를 맺은 숙소 인근 마트에서 숙소까지 먹거리를 배달해 준다.

이들은 대학생이 주로 찾는 경기도 가평군 대성리 엠티촌의 숙소들과 제휴를 맺고 엠티에 적합한 250개 방을 확보했다. 지난해 9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뒤 현재 대학생 7000여 명이 이용할 만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사업자와 고객이 모두 대학생이기 때문에 메신저를 통해 친근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점도 강점이다. 불편 사항은 바로 서비스에 반영한다.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윤석 미래인재양성팀장은 “최근 스타트업 창업의 트렌드는 고객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반영하는 ‘린(lean)스타트업’이다. 대학생 창업에서도 고객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창업을 할 때 학생이 부닥치는 첫 번째 장벽이 자본금이다. 우리도 처음에는 수중에 있던 35만원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자금을 모으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각종 공모전과 경진대회에 출전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공모전에 나가려면 구체적인 사업계획서를 써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기 사업을 정리해 볼 수 있고 현실적인 가능성을 따져볼 수 있다. 전문가의 조언도 얻고 잘되면 상금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창업 전에 공모전에 도전하기를 추천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대학생 창업의 목표가 ‘대박’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김용태 남서울대 교양학부 교수는 “창업은 넓게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타인과 협업하고 융합적으로 사고하는 경험 자체가 대학생에게는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창업을 한다고 무리해서 대출을 받거나 휴학부터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대학의 창업지원센터를 방문해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준비가 확실히 됐다고 느끼기 전에는 학업과 병행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원본기사 보러가기: [출처: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0176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