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경기 수원의 성균관대 자연과학 캠퍼스에 세계적 화학기업 바스프(BASF)의 독일 본사에서 최고위 인사가 찾아왔다. 그의 방한은 바스프가 4월 한국에 짓겠다고 발표한 '아시아태평양 전자소재 연구개발(R&D)센터'와 관련, 위치 결정을 위한 최종 점검 때문이었다. 이 인사는 김현수 부총장의 안내를 받으며 캠퍼스를 둘러봤는데, 특히 갖가지 고가 실험 분석 장비가 있는 공동기기원에 한참 머물며 2대의 투과전자현미경(TEM)을 꼼꼼히 살펴봤다.
이 장비는 원자 단위까지 측정이 가능해 전자소재 연구에 필수적인 것으로 대당 가격이 70억 원이 넘는다. 송성진 성대 기획조정처장은 "진동에 민감해 방진설비가 된 별도 건물을 지어 설치해야 하는 장비를 2대나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다소 놀라워하더라"며 "또 성대가 전 세계 민간 연구기관 중 휘는 디스플레이, 수소자동차용 연료 전지 등에 쓰이는 차세대 전자소재 그래핀 관련 특허를 가장 많이 출원했다는 점도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난 이달 초 바스프는 2014년 오픈을 목표로 R&D센터를 성대 수원 캠퍼스에 짓는다고 확정 발표했다.
사실 바스프 R&D센터의 입지가 대학 캠퍼스가 될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실제로 지멘스, 머크 등 최근 한국에 R&D센터를 짓는 글로벌 기업 대부분이 산업단지나 별도 공간에 터를 마련했다.
앞서 벨기에 브뤼셀에 본사을 둔 150년 역사의 세계적 화학기업 솔베이(Solvay)는 이화여대에 R&D 센터를 만들었다. 다음달 중순 정식 개관을 앞두고 있는 이대 산학협력관에 현재 이사작업이 한창이다. 최진호 이대 대외부총장은 "2011년 산학협정을 맺고 지난해 6월부터 공사를 진행했다"며 "국내 대학 중 처음 글로벌 기업의 R&D센터를 캠퍼스 안에 유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솔베이는 이곳에서 리튬 배터리, 염료 감응 태양전지, 유기태양전지와 나노 소재 기술 등을 집중적으로 다룰 계획. 이 회사는 심지어 전 세계 31개 법인을 커버하는 특수화학 글로벌본부도 이곳으로 옮길 예정이다. 글로벌 기업의 사업 본부 전체가 국내에 들어서는 것 역시 처음이다.
이들은 왜 한국의 대학캠퍼스를 선택한 걸까. 장순호 솔베이코리아 상무는 "중국 일본 아닌 한국에 R&D센터를 두기로 한 것은 삼성 현대차 LG 등 한국 기업의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며 "그 동안 만들어 온 다양한 기초 화학제품을 어떻게 완제품으로 만들 수 있을 지 답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학을 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산학연 연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대학들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이공계를 강화하고 연구시설이나 장비 확보에 꾸준히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바스프 관계자도 "그룹 차원에서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등 주요 고객사와 가까이서 연구 개발을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며 "한국 대학에 우수한 교수진 등 연구 인력이 많고 이들이 대기업과 산학협력 등을 통해 R&D를 많이 하고 있어 그 결과를 공유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성대는 성균나노과학기술원(SAINT) 등을 통해 삼성전자와 그래핀 등 다양한 전자소재 관련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솔베이와 바스프가 대학에 연구의 둥지를 틀자, 국내 대학들도 앞다퉈 글로벌 기업유치에 나서고 있다. 송성진 성대 기획조정처장은 "글로벌 기업 유치와 공동 연구는 결국 대학의 경쟁력과 직결된다"며 "연구 인력의 취업 기회도 늘리고 결국 더 좋은 인재들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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